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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커피명상록
[커피와 언어학] 언어능력과 향미의 문법(grammar of Flavor)
  • 커피 향미를 느끼고 묘사하는 인간의 능력은 언어처럼 타고 나는 것
2022.03.17 13:23:06 292

<편집자주: 경험하지도 않은 것을 말을 할 수 있는 언어능력(language faculty)이란, 인간만이 가진 본질적 능력, 곧 본성(Nature)이다. 예스퍼슨, 촘스키, 양동휘 등 수많은 지성인을 통해 많은 연구가 축적된 언어학, 특히 생물언어학(Biolinguistics)은 커피 향미를 인지하고 묘사하는 ‘향미의 문법(grammar of Flavor)’을 탐구하는 데 등불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커피애호가들은 언어학을 사유해야 한다.>
 

언어는 조약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진 세파 속에서 어느 한 구석 모난 곳 없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조약돌. 그것이 생명체라면, “자연과 가장 조화를 이루는 상태로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 돌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한 봉우리를 이루던 거대한 바위였을 지 모른다. 크로노스 속에서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이젠 가장 낮은 바닷가에서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조약돌은 물의 방향을, 바람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모든 물리력들을 스쳐 지나가게 한다. 마찰이나 갈등이 벌어질 일이 없으니 더 이상 변할 필요도 못 느낀다. 그 자체가 자연이 되어 굳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쓰는 언어도 긴 세월 속에서 더 이상 덜어낼 구석이 없이 완벽한 형태로 우리 몸 속에 들어앉았다. 바람처럼 물처럼 자연스레, 언어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생각을 전하고, 지혜를 만들어 주었다. 혼자 있는 사람에게 언어는 그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을 만들어 냈으며, 우리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것을 사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언어가 없었으면 우리는 어떻게 지혜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중용’은 시대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속성을 말해주는 측면이 있다.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 언어의 속성이 바로 그것이다. 언어에 잉여가 있다거나 소모적이었다면 그 언어는 사라질 위험이 크다. 왜냐하면 언어는 인간의 본성이다. 생물체에게 적용되는 자연의 법칙이란, 과하거나 부족한 것은 살아남을 수 없다. 언어는 이처럼 생명체와 흡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문법이란, 언어 사용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는 규칙들을 학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이라는 예스퍼슨의 직관은 매우 인류애적이다. 문법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공동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말하고 글 쓰는 법을 억지로 제한하는 것은 인류의 본성을 억누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런 방식이라면 인간의 창조성을 아예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예스퍼슨의 철학과 신념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지를 열어준다. 특히 “언어는 생명이다”라는 견해가 그렇다. 철로의 가치가 자체의 실존에 있지 않고 기차를 달리게 하는 데 있듯이, 언어의 가치도 언어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구사하는 사람에게 있다. 언어는 단지 생각을 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깊은 사유로 이끌며 더욱 지혜롭도록 도와주는 까닭이다.

“언어가 인간으로 하여금 지적 교감으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지 않도록 개인들 간의 영혼의 틈새를 이어준다”는 에스퍼스의 일갈은 언어를 가지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어쩌면 우리가 현재 상상할 수 없는 매우 놀라운 무엇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박영순 I <커피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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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언어다. 사유하는 방식이다" /source:커피비평가협회(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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