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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에서 가장 오래 산 커피나무 찾았다.
  • 1960년대 초 창경궁 온실서 서식… 서울대공원 식물원에 생육 확인
2022.09.07 13:09:30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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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대공원 식물원 열대관에서 자라고 있는 커피나무(가운데). 1960년대 미8군을 통해 한국으로 옮겨진 하와이 커피나무 묘목에서 시작된 혈통이다. 모란농장-창경궁-남산식물원을 거쳐 1997년 부모 나무들이 이곳 식물원에서 증식돼 자랐다. 수령이 25년인 것으로 추정된다. 온실에서만 자라 나무의 굵기가 가늘고 연약하게 보이며, 키는 수차례 가지치기를 통해 5m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source: 커피비평가협회(CCA)

우리나라 최초로 추정되는 커피나무가 적어도 1960년대 초에 존재했으며, 이 커피나무의 혈통이 현재도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커피데일리’와 ‘커피비평가협회’(CCA)가 과거 언론 기사 및 문헌 등을 토대로 장기간 탐사한 결과 파악됐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커피나무가 처음 서식한 시기를 1990년대 이후로 보는 그간의 통설을 뒤집는 결과로, 국내 커피나무의 시원(始原)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우리나라 최초로 여겨지는 커피나무가 1960년대 초 창경원(현 창경궁) 식물원 대온실에서 재배된 사실이 과거 언론 기사로 확인됐다. 1963년 1월 9일자 ‘경향신문’은 “영하 속의 푸른 성장 / 열대의 포근한 미소” 제하의 기사에서 “창경궁 식물원에 5년생 커피나무가 무성하여 고염 알만 한 빨간 열매가 한창 익었다”며 200여 개가량의 열매를 맺은 커피나무의 모습을 전했다.

또, 그 이듬해인 1964년 12월 1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당시 창경궁 식물원 관리책임자 김유현 씨의 기고문을 통해서도 ‘커피나무의 존재’가 확인된다. 김 씨는 “겨울을 모르는 꽃의 지대”라는 제목의 이 기고문에서 “식물원 온실에서 커피나무 두 그루가 열매를 열어 검은 자색으로 익어간다”면서 그 씨를 심어 대량 번식을 시켜서 애호가들에게 분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또한 1963년 봄에 500여 그루의 커피나무 묘목을 민간에 유상 분양한 일을 글에서 함께 거론했는데, 이는 당시에 이미 커피나무의 재배 및 증식이 상당 규모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실제로, 10여 년 후인 1973년에는 창경궁에 화초판매소를 설치해, 커피나무, 고무나무를 비롯한 20여 종의 식물을 ‘창경궁 (방문) 기념선물’로 싼값에 판매한다는 신문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1973년 4월 12일 ‘경향신문’).

20여 년 이상 창경궁 식물원 대온실에서 서식하던 ‘원조’ 커피나무는 1980년대 중반 남서울대공원(현 서울대공원)이 새로 문을 열고, 창경궁 식물원이 난 위주의 온실로 개조되면서 다른 열대 식물과 함께 남서울대공원 식물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1981년 11월 3일 ‘동아일보’ 등). 서울대공원 홈페이지 ‘식물원 발자취’ 코너에는 “1986년 창경원 식물원의 식물을 이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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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식물원 조경과 이상균 주무관(왼쪽)이 6일 열대관에서 자라고 있는 커피나무 앞에서 박세영 커피비평가협회 학술조사팀장과 함께 이 커피나무의 기원과 생육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source: 커피비평가협회(CCA)

원조 커피나무의 후대, 서울대공원 식물원 열대관에 생존 

우리나라 최초 커피나무의 후대가 서울대공원 식물원에 아직 현존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정황을 토대로 사전 조사 및 방문 취재를 한 결과 파악됐다.

커피데일리 기자와 커피비평가협회(CCA) 박영순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팀은 9월 6일 서울대공원 식물원을 방문해 해당 커피나무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 커피나무는 높이 5m가량의 자가수분이 가능한 아라비카 종(Coffea arabica L.)으로 식물원 ‘열대관’ 한쪽에 홀로 자리하고 있었다. 조사팀은 사전에 서울대공원 식물원 측에 협조를 요청해, 해당 커피나무의 구체적인 유래 및 내력을 알아보려 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공식 문서들이 거의 수기로 작성되고,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았기에 창경궁에서 옮겨질 당시의 식물 목록 등 관련 문서를 서울대공원 식물원을 통해 직접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창경궁으로부터의 이주 이후 서울대공원의 식물관리대장에서 다른 곳에서 커피나무를 입수, 재배한 기록이 없는 점, 1997년 기존의 커피나무를 증식해 그중 일부를 서울시립대에 분양했다는 공식 기록이 남아 있는 점, 그 이후의 증식 기록이 따로 확인되지 않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해당 커피나무가 97년에 원조 커피나무를 증식해 얻은 후대 커피나무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서울대공원 식물원 조경과 이상균 주무관은 “첫 근무를 시작한 12년 전에도 예의 커피나무를 비롯해 몇 그루의 커피나무가 서식하고 있었다”고 밝혀 이 같은 시각에 무게를 더해줬다. 

해당 커피나무는 추정 수령에 비해 나무 굵기가 가늘고 키는 매우 높은 편이었다. 이 주무관은 이에 대해 “커피나무가 주변의 큰 나무들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햇볕을 더 받을 수 있도록 높이 성장에 주력한 결과로 보인다”며 “계절과 기후의 변화를 겪는 자연 환경과 달리 온실 속에서 서식해 나이테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커피나무-5m.jpg위에서 내려다 본 커피나무. source: 커피비평가협회(CCA)

한편, 본지에서는 “1960년대 초 창경궁 식물원에서 서식하던 커피나무가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나무일 것으로 추정”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보완 조사 및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961년에 예비역 대령 김창숙 씨가 전역장병 50여 명으로 구성된 모란농장 개척단을 이끌며 커피를 시험재배해 반 가마 분량의 씨앗을 수확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기 때문이다(1962년 2월 9일 ‘동아일보’). 모란농장의 커피 농사 소식은 당시 비록 단발성 기사로 그쳤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커피 역사에 또 다른 획을 그을 ‘일대 사건’으로 평가될 만하다.  

I 송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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