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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사이언스
커피가 치매를 치료?…‘커피만능주의’를 경계한다
2016.10.11 15:52:11 41

“커피가 치매에 좋다”는 소식은 이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건강정보가 됐다.
물만큼 자주 마시게 된 커피에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커피애호가들과 치매극복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호응하는 뉴스라 하겠다. 

관련 외신보도가 잇따르지만, 커피에 들어 있는 어떤 성분이 치매에 어떻게 작용해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힌 것은 없다.

반면 기사의 제목들은 한결같이 커피가 마치 치매를 극적으로 예방하고 치료까지
해 줄 것과 같은 인상을 풍긴다.  

카페인은 혈액-뇌장벽( blood brain barrier; BBB)을 쉽게 통과해 뇌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중추신경에 문제가 생기는 치매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기대를 받아왔다.

‘노인학 저널(The Journal of Gerontology)’ 최신호는 미국 하버드의대를 비롯한
대학공동연구팀이 하루 261㎎ 이상의 카페인을 섭취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발병 위험성이 낮다고 발표한 내용을 실었다.

커피의 특정성분이 치매발병 기작에 구체적으로 작용해 발병위험성을 낮춘다는
내용은 아니었다. 동물실험이나 임상실험을 거쳐 약리효과를 입증한 것이 아니라
역학조사를 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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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 성분은 혈액뇌장벽을 통과해 중추신경에 직접 작용한다.
 


▶ 커피 매일 2잔씩 10년 마셔야 치매 예방? 

연구팀은 65세 이상 여성 6467명을 10년 동안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매일 카페인을 261㎎ 이상 섭취한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성이 36%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인지능력 저하 진단을 받은 388명의 자료를 보니, 이들의 일일 카페인
섭취량은 평균 64㎎에 못 미쳤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들어있는 카페인의 함량은
커피전문점마다 다르지만, 120~200㎎으로 통용된다.

연구결과대로, 치매 예방에 효과를 보려면 커피를 매일 2잔 이상씩 10년을 마셔야 한다.

영국 브리스톨대학팀의 연구결과도 “커피가 인지반응 속도를 높이며 치매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내용으로 외신을 탔다. 연구팀이 55~91세의 건강한 성인 38명에게
갑자기 불이 켜지는 것을 보게 하고는 그와 같은 색의 버튼을 누르게 함으로써
주의력과 반응속도를 측정하는 조사였다.

카페인을 섭취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평균 인지반응 시간이 빠르고
버튼을 누르는 정확성도 의미 있게 높았다. 치매처럼 뇌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정복하기란 현재의 의술로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와 같이 비교적 간단하게 설계된 반응속도 조사와 역학조사는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과학자들은 단순한 결과들로부터 데이터를 축적해가면서 치매정복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데, 이를 전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성급하다.

브리스톨대학팀의 연구결과도 커피가 치매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제목으로 퍼졌다.

미국 ‘농식품화학 저널(Journal of Agriculture and Food Chemistry)’에 생쥐에게
커피의 향을 맡게 한 뒤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를 조사한 결과가 게재된 적이 있다.

커피 향을 마신 쥐들이 그렇지 않은 쥐들에 비해 뇌 속에 있는 11가지 유전자의
발현이 활발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연구도 마치 커피가 치매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전해졌다.
이유는 커피가 뇌의 특정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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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면 치매에 좋다는 결과들은 아직 임상단계에도 가지 못한 내용들이다.
 

 

프랑스와인의 프렌치 패러독스와 커피만능주의? 

비슷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커피를 주입한 쥐들의 공간 지각력이 높아진 것이
치매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둔갑했으며, 연구한 당사자가 “카페인이 치매치료에
효과가 있을 지는 아직 연구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어도, 커피가 치매에 특효가
있는 것처럼 기사가 전송됐다.

커피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관련 정보가 쏟아진 현상은 1990년대 와인에서 빚어진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에서 유사함이 발견된다.

용어 자체는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이나 영국인보다 콜레스테롤을 많이 섭취하면서도
심장병에 적게 걸리는 역설적인 현상을 지칭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지방을 많이 먹는데도 와인을 많이 마시기 때문에 심장병에 잘 걸리지
않는 것으로 풀이돼 세계적으로 프랑스와인의 붐을 불렀다.

당시 기울어가던 와인산업이 프렌치 페러독스로 부활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이른바 ‘와인만능주의’를 낳으면서
알코올 과다섭취로 인해 건강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프렌치 패러독스는 나중에 와인보다는 영국과 미국인보다 채소와 과일, 통밀빵을
상대적으로 많이 섭취하고 버터는 적게 먹는 식습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치매는 뇌신경 세포에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β-amyloid protein)과
타우 단백질(tau protein)이 비정상적으로 응집돼 발병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과 클로로겐산과 같은 폴리페놀 성분들이 독성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의 플라크 형성과 타우 단백질 엉킴 현상을 억제하는 것으로
의학계는 보고 있다. 

커피가 치매 예방에 유익하다는 개연성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분명 반길 일이다. 그러나 커피애호가일수록 커피만능주의를 경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이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커피가 치매를 치료한다는 식의 정보를 맹신하고 커피를 과다하게
마시는 것은 분명 해선 안 될 일이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필자는 뉴욕 CIA 향미전문가, 프랑스 보르도 와인블렌딩, 일본 사케소믈리에,
이탈리아 바리스타. 미국커피테이스터, 큐그레이더 등 식음료관련 국제자격증과
디플로마를 30여종 취득한 전문가이다.
20여년간 일간지에서 사건 및 의학전문기자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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